모과 한 개

추석이 막 지나갔다. 우리 모과나무에 달랑 모과 한 개가 달려 있다. 낙과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해마다 가지가 휘도록 모과가 열렸다. 모과를 관상하는 재미며, 수확의 기쁨이며, 이웃에 나누는 즐거움이 꾀나 컸다. 도심에서는 흔치 않은 여유요 멋이었다. 올해는 모과 한 개. 그마저도 병들어 있다. 거둘 게 없다. 상실이다. 상실은 아픔이다. 작건 크건 분명히 아픔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아픔이다. 상실은 훈련이다. 나는 매일 상실을 훈련한다. 나를 상실하는 훈련을 한다. 나를 상실한 자리에 진리를 채우는 훈련을 한다. 벅찬 훈련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훈련이다. 진리는 반드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틴다. 상실은 획득이다. 나무는 열매를 잃지만 또 열매를 얻는 법. 잃는 것은 얻는 것이다. 상실은 그래서 아픔이요 훈련이요 획득이다. 병든 모과 한 개를 조심스레 만진다. 따가운 가을볕이 묻어난다. 햇볕은 거기에도 있었다. 병든 모과 한 개에도 말이다. 바늘로 찌르면 터질듯 한 저 파란 하늘이 유별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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