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01

봄날, 정오 가까운 시간, 나는 시립도서관 어문학 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드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젊은이가 읽던 책 위에 엎드린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하면 저러랴 싶었다. 사서(司書)가 다가와 흔들어 깨웠다. 나도 책을 읽다가 더러 깜박 졸 때가 있는 터라 겸연쩍어 하는 그의 모습에 동정이  갔다. 잠꾸러기, 잠꼬대, 잠버릇, 잠투정 같은 일상어에는 부정적인 뜻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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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글자

바울은 편지를 쓸 때 서기에게 불러주어 대서하게 하였다. 그러나 편지의 끝 부분은 친서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친필로 크게 써서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왜 친필을 ‘큰 글자’로 썼을까. 나는 그 이유를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가시’로부터 찾으려 한다. 그 가시를, 터툴리안은 귀앓이 또는 두통, 크리소돔은 대적 자들에게 당한 신체적 고통, 루터는 욕정의 유혹으로 보았다. 안질(眼疾), 간질, 말라리아열병, 심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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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부시

남편과 아들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여자, 바버라 부시. 그녀는 처음 만난 남자와 데이트도 없이 다니던 대학도 중퇴하고, 19세의 나이에 결혼하였다. 사귀어보고 따져보고 학교라도 졸업하고 결혼하는 게 보통사람들 아닌가. 그녀는 뚱뚱하고 머리가 희고 얼굴에 주름이 많고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날씬한 몸매에 머리 염색하고 성형수술하고 어디에나 잘 나서려는 게 보통사람들 아닌가. 그녀는 남편이 대통령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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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

해수온천을 하려고 해운대행 시내버스를 탔다. 등산복 차림의 한 노인이 버스 입구에 다가와 운전기사에게 5천 원 짜리 한 장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걸로 탈 수 있소?”운전기사가 노인을 흘긋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거스름돈이 없다는 뜻이다. 노인은 난감한 듯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금세 태도를 바꾸어 말하였다.“노인장, 그냥 타시오.”얼떨결에 버스에 오른 노인은 멍하니 서있었다. 또 운전기사가 말하였다.“빈자리가 많은데 앉으시지요.”노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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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설비

집안에 수리할 일이 생기면 S설비를 부른다. 얼른 오지 않는다. 조바심이 나서 다시 찾아가 부탁한다. 애가 탈대로 타 지칠 때쯤에서야 나타나서는 갖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만 해도 그렇다. 약간만 손보면 될 법한 것도 크게 헤집어 놓고 일한다. 수리비도 턱없이 비싸게 부른다. S설비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어느 겨울날 아침, 옥외 화장실 물통이 고장 났다. S설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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