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야기

나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희디흰 피부의 여자를 사귀었다. 얼굴이 너무 희어서 의사가 건강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할 정도의 여자였다. 어머니는 내가 사귀는 아가씨를 보고 무척 실망하였다. 가냘프고 창백하다는 것이다. 튼튼하고 둥실둥실한 며느릿감을 원하던 어머니로서는 그럴 법도 하였다. 어쨌든 나는 그녀와 결혼하였다. 아내는 먹성이 좋았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힘든 일도 겁 없이 하였다.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순산하였다. 어머니의 원대로 아내는 둥실둥실한 몸매를 지니게 되었다.  아내는 낚시 가공업을 벌여 가계를 불렸다. 시동생들을 시집 장가보냈다.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다. 얼마 후 어머니마저 몸져누웠다. 십 년여 동안의 긴 와병, 아내는 눈물겨운 간병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먼저 타계하고 아버지가 그 뒤를 이었다. 장례 때마다 아내는 사흘 밤낮을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일을 처리하였다. 아내는 오십대 후반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자동차를 전공하였다. 자동차정비와 검사, 두 가지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우수한 성적을 얻어 장학금을 탔다. 아내는 캠퍼스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노랑머리 급우들이 아내를 ‘어머니’라 불렀다. 아내는 두 아들에게 높이 날고 멀리 보라고 가르친다. 아내는 그들의 끝없는 학문의 길을 이해하며, 성원을 보낸다. 십년 세월 두 아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통화하며 함께 사는 것처럼 지낸다. 아내는 이제 졸업이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하려고 한다. 등산가가 산을 오르고 또 오르듯이 아내도 공부하고 또 공부하려고 한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더니 공부가 좋아 공부를 하는 것일까. 아내는 책이나 컴퓨터를 잡았다 하면 거의 밤을 새운다. 그 열정과 몰입의 원천이 어딜까. 못 말리는 아내, 이 여자를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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