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정오 가까운 시간, 나는 시립도서관 어문학 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드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젊은이가 읽던 책 위에 엎드린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하면 저러랴 싶었다. 사서(司書)가 다가와 흔들어 깨웠다. 나도 책을 읽다가 더러 깜박 졸 때가 있는 터라 겸연쩍어 하는 그의 모습에 동정이  갔다. 잠꾸러기, 잠꼬대, 잠버릇, 잠투정 같은 일상어에는 부정적인 뜻이 배어 있다. 일반적으로  잠을 많이 자고 잠을 즐기는 것은 나쁜 일로 여겨진다. 또한 잠은 무지, 죄, 죽음 따위의 영적 상징으로도 쓰인다. 그래도 나는 새근새근 잠자는 아기나, 힘든 일을 마치고 골아 떨어져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되레 평화와 은총을 느낀다. “잠을 자야 꿈을 꾸지.”라는 속담처럼, 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하여 간혹 잠을 이용한다. 푹 자고 나면 의외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면 휴식이 창조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잠이 장수비결이라는 노인이 있다. 점심 후의 낮잠 한 시간으로 건강을 지키는 의사도 있다. 짐승들은 아프면 먹지 않고 계속 잠을 자다가 다 나으면 툴툴 털고 일어난다. 잠은 자연현상이다. 잠이 오면 자는 게 순리다. 잠을 억지로 참으면 병이 난다. 나는 피곤하면 만사 제쳐놓고 잔다. 배부른 짓이라는 가책을 느끼지만 그건 내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이라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살기 위해 자야 하고 살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영적으로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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