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는데

봄이 왔다. 진달래는 만개, 철쭉 꽃망울은 금세 터질 듯하다. 철쭉꽃은 결코 진달래꽃을 앞지르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순리다. 사업차 카타르 행을 준비하던 동생이 이라크 전쟁을 전후하여 몇 달째 발이 묶여 있다. 종전(終戰)의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훌쩍 집을 나선다. 아들들이 어릴 적 살던 산동네를 찾는다. 집들은 거의 2층집으로 탈바꿈. ‘올챙이 계곡’은 물이 마르고 산자락을 돌던 실개천은 복개되어 사라졌다. ‘마왕의 고지’에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고 ‘할머니 절’은 철거되었다. ‘독수리 바위’만이 여전히 산비탈을 지키고 있었다. 귀가를 서두른다.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은 편치 않다. 이라크 전쟁, 북핵문제, SARS. 충격과 공포의 현실이다. 이 땅에 봄은 왔는데 지구촌은 아직 봄이 아니다. 한겨울이다. 하늘은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라는데 사람들은 툭하면 갈라져 다툼을 일삼는다. 자연은 섭리와 순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는 되레 충격과 공포를 배우고 있다. 인간의 원죄 탓일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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