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지나간 숲에 갔다. 꺾이고 찢어지고 뽑혀버린 나무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누워있었다. 일꾼들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토막 내어 치우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태풍에 못 견뎌 떨어진 초록 낙엽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새의 울음소리와 벌레소리는 잠잠하고 대신 전기톱 소리가 숲을 울리고 있었다. 기둥뿐인 커다란 나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풍을 맞고도 보란 듯이 버티고 서있는 그 모습이 놀라웠다. 아마 가지와 잎이 없어서 바람을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뿌리째 뽑혀 드러누운 나무들은 하나같이 뿌리가 적은 대신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였다. 태풍에 살아남은 나무들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보였다. 겉모습부터가 건실한 나무들이었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제 분수를 지켰던 나무들이었다. 나는 내 분수대로 살고 있는가. 뿌리를 튼튼히 키우고 있는가. 너무 가지를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잎을 많이 달고 나풀거리는 것은 아닌가. 태풍 ‘매미’가 지나간 황량한 숲을 걸으며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