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이번 주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연구소에 출근하지 않고 도서관과 집에서 각각 연구를 했다. 수요일은 집근처 University of Shady Grove 라는 대학이 있어 그 도서관에서 논문을 썼다. 최근 논문을 쓰는데 있어 다소 슬럼프에 빠진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진도가 나가지 않아 걱정을 했었다. 발견한 사실은 논문 세편을 급하다고 한꺼번에 밀고 나가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세편 모두 급하다는 생각에 현실적이지 않는 계획을 세우고 마음만 급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뭔가 빨리 결과를 보려는 조급함을 버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1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서서히 누군가를 가르치며 도와서 연구를 하는 법을 배우자니 옛습관을 벗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가르치며 도우려고 하다가도 마음이 급해서 내가 해치워버리니 나는 혼자 바쁘고 배우려고 온 사람은 큰 소득이 없는 것이다. 좋은 연구자는 될 수 있겠지만 좋은 선생은 될 수 없다. 두가지 모두 잘 되면 좋겠다. 이런 때면 나에게 항상 좋은 선생이 되어 주셨던 볼치 교수님이 생각난다. 아무튼 수요일 도서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꼼짝않고 앉아서 그동안 질질 끌던 논문 한 편을 끝냈다. 집에 와서야 점심을 안먹은 것을 알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7시간이 마치 1분 같이 금세 지나갔다. 금요일인 오늘은 집에서 논문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두번째 끌어오던 논문에 진보를 보여야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아침을 시작했지만 여러가지 일이 겹쳐 오전에는 잔디를 깎고 차 청소를 하고 오후에는 갑자기 급해보이는 계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새 건물로 이사 온 후 그동안 사용하던 서버를 인터넷에 연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요즘 제 시간에 뭔가 계산을 끝내는데 시간이 자꾸만 지연되고 있다. 정말 복잡한 일이고 또 많은 일인데 주변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간단한 계산으로 착각한다… 아니 어쩌면 뭘하는지 잘 모르다보니 막연한 기대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며칠전 볼치 교수님과 통화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얘기했더니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혼자 하느냐, 사람들이 너를 슈퍼맨으로 아는 것 같다고 하셨다. 슈퍼맨이 되려고 한 건 아니고 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뭔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병적인 성격이 나를 슈퍼맨으로 몰아가는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때로는 자기 전 약 2시간을 정말 손가락이 안보일 정도로 빨리 컴퓨터를 두드리며 중요한 프로그램을 마치기도 한다. 이건 분명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마치 삼손이 순간 엄청난 힘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듯이. 나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신다는 강항 확신이 든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을 맡기셨는가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며칠 전 미국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한국인 과학자를 직장에 불러 같이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그 친구가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니 크리스천인 그 마저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나님께서 무슨 관심이 있겠느냐고. 지구상에 정말 작고 오묘한 것들까지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 수천 수만가지의 꽃들은 왜 만드신걸까. 과연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믿고 천국가는 다소 직선적으로 보이는 “세계비전”에만 있는 것일까?

4 thoughts on “근황”

  1. 하나님은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시다. 연구의 노고를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면 좋은 선생,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2. 춘식이형, 최근 두달간 새벽쪽잠을 자고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실험하는데 결과가 쉽사리 나오지 않네요. 하루에 시약과 기기사용료만 저혼자 1800불을 쓰는데 두달간 지속되니까 제 실험때문에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아서 교수님께서 다음학기에 연구실 전원에게 티에이를 두개씩 더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저 때문에 동료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눈치가 보이네요. 한발치만 가면 훌륭한 논문이 나올 것 같으니까 교수님도 저도 이 연구를 쉽게 포기 못하고 있고요. ‘이번주 안에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라고 매일 마음만 급해져 갑니다. 형 글을 보면서 설명해도 이해받기 힘든 연구자들의 고충이 공감이 됩니다. 실험 한순간 한순간 계속 하나님께 ‘이번에는 제발 결과가 나오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또 밤마다 교수님께 ‘결과가 잘 안 나왔으니 시약 한번만 더 결제해줄 수 있습니까’ 라고 실망스런 레포트 써야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형처럼 궤도에 올라있어도 그 능력만큼 더 많은 일들을 하니 연구자는 초보나 전문가나 쉴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참.. 여름에 한번 형댁에 방문해야 할텐데요.

    1. 귀한형제! 수고가 많구만. 그럴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와이프는 같이 지내고 있는건가? 신랑이 바쁘니 고생이 많겠구만. 그러게 여름 가기 전에 한번 봐야되는데. 그 실험 결과나 나와야 볼 수 있을 것 같구만! 이번 주에는 춘익이네가 메릴랜드에 와있어. 같이 풍성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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