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name: Grandpa

태양설비

집안에 수리할 일이 생기면 S설비를 부른다. 얼른 오지 않는다. 조바심이 나서 다시 찾아가 부탁한다. 애가 탈대로 타 지칠 때쯤에서야 나타나서는 갖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일만 해도 그렇다. 약간만 손보면 될 법한 것도 크게 헤집어 놓고 일한다. 수리비도 턱없이 비싸게 부른다. S설비는 매번 그런 식이었다.어느 겨울날 아침, 옥외 화장실 물통이 고장 났다. S설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금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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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야기

나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희디흰 피부의 여자를 사귀었다. 얼굴이 너무 희어서 의사가 건강진단을 받아보라고 권할 정도의 여자였다. 어머니는 내가 사귀는 아가씨를 보고 무척 실망하였다. 가냘프고 창백하다는 것이다. 튼튼하고 둥실둥실한 며느릿감을 원하던 어머니로서는 그럴 법도 하였다. 어쨌든 나는 그녀와 결혼하였다. 아내는 먹성이 좋았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힘든 일도 겁 없이 하였다.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순산하였다. 어머니의 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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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사람은 이름으로 웃고, 이름으로 운다. 인생의 광장에서, 시험의 고비마다에서, 그 떨리는 발표의 장에서 이름이 있어 기뻐하고, 이름이 없어 눈물을 흘린다. 이름이 나면 유명인사요, 이름이 묻히면 무명인사다. 유명하면 스타가 되고, 무명하면 돌이 된다. 사람들은 세상에 이름을 내기 위해, 이름을 남기기 위해, 이름을 갈고 닦는다. 성서에는, 세상 이름과 다른 ‘그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높이고, 그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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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햇빛이 유난히 눈부시던 날, 해바라기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동그란 얼굴을 내밀었다. 해를 바라보았다. 감격이었다. 그 현란한 빛깔과 불타는 열정에 눈을 떼지 못했다. 애오라지 해만을 바라보고 살겠노라 다짐하는 듯하였다. 해바라기는 가없는 해의 사랑을 받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서히 얼굴에는 살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해바라기는 어느새 살찐 해바라기가 되었다. 그런데 어찌하랴. 그 유연하던 얼굴이, 이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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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행렬의 맨 앞에 회개 피켓이 보인다.달랑 한 사람이 구호를 외치며 걷는다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서너 걸음 뒤로 한 팀이 이어진다선두 한 사람이 성령 피켓을 들고 가고그 뒷줄에는 아홉 명이 일렬횡대로 따르고 있는데그들이 든 각 피켓에는 이런 글자들이 보인다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그들은 하나의 구호를 외친다성령의 열매를 끝으로 추수 피켓을 앞세우고 그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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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아들들이 다니던 중학교 운동장. 나는 가끔 산책 삼아 그곳을 찾는다. 아침에는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외려 한적한 오후를 택한다. 겨울치고는 좀은 따스한 햇볕이 아직 운동장에 남아 있다. 나는 철봉에 매달려 기를 쓰고 턱걸이를 해본다. 안간힘을 쓰다 온 몸을 쭉 펴보곤 이내 내려선다. 철봉대 모래밭에서 너 댓 살 여자아이 둘이 모래장난을 한다. 한 참을 깔깔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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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日出) 일몰(日沒)해가 뜨고 해가 진다해는 가만한데 사람들이 뜬다 진다 한다 연말연시(年末年始)해가 끝나고 해가 시작된다해는 계속인데 사람들이 끝이다 시작이다 한다 송구영신(送舊迎新)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해는 불변인데 사람들이 헌 거다 새 거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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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하늘 법정.무지개 구름다리를 지나 아득히 바라보이는 저 높은 곳에찬란한 빛이 있다.  한 사람 씩 그 빛 앞으로 불려 간다. 내 차례다.나는 빛에 이끌려 새처럼 날아간다.황금빛 보좌 앞에 당도하니 빛으로부터 근엄한 소리가 들린다.“너는 땅에서 무엇을 하였는가?”“……”“다시 한 번 묻는다. 땅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나는 망설이다가 드디어 입을 연다.“저는 아내와 두 아들을 사랑하다 왔습니다.”저 만치 유난히 눈부신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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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씨

묵씨(黙氏)는 나의 별명이다. 대학 시절, 급우들은 서로 경어를 썼다. 두세 살 나이 차이는 보통이었으므로 함부로 반말을 쓸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나의 이름에 씨(氏)자를 붙여 ‘승묵 씨’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시인 친구가 나의 과묵한 성격에 걸맞다면서 그냥 ‘묵씨’로 부른 게 계기가 되어 그 후로 다른 친구들도 별 생각 없이 따라 부르게 되었다. 은발의 나이인 오늘까지도 ‘묵씨’라는 별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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