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난간 숲
태풍 ‘매미’가 지나간 숲에 갔다. 꺾이고 찢어지고 뽑혀버린 나무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누워있었다. 일꾼들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토막 내어 치우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태풍에 못 견뎌 떨어진 초록 낙엽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새의 울음소리와 벌레소리는 잠잠하고 대신 전기톱 소리가 숲을 울리고 있었다. 기둥뿐인 커다란 나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풍을 맞고도 보란 듯이 버티고 서있는 그 모습이 놀라웠다. 아마 […]
태풍 ‘매미’가 지나간 숲에 갔다. 꺾이고 찢어지고 뽑혀버린 나무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누워있었다. 일꾼들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토막 내어 치우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태풍에 못 견뎌 떨어진 초록 낙엽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새의 울음소리와 벌레소리는 잠잠하고 대신 전기톱 소리가 숲을 울리고 있었다. 기둥뿐인 커다란 나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풍을 맞고도 보란 듯이 버티고 서있는 그 모습이 놀라웠다. 아마 […]
“장군님 사진을 깔고 앉다니…” 언젠가 평양에서 남측 기자가 김정일 사진이 실린 ‘로동신문’을 깔고 앉았다가 북측 기자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장군님 사진이 비에 젖고 있는데도…” 북한 예술단이 서울에서 공연하던 때의 일이다. 그들은 공연장 외벽에 걸린 대형 광고물의 김정일 사진이 비에 젖고 있는 걸 방치한다며 거세게 항의하였다. “장군님 사진을 비 맞히다니…” 대구U대회 북한 응원단은 김정일 사진을 비
비 온 뒤의 여름 계곡. 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진다. 사위(四圍)는 짙은 녹색의 숲. 한 데 모아 쥐어짜면 녹색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폭포 앞에서 발을 멈춘다. 흐르는 물은 절벽을 만나면 폭포소리를 낸다. 우리는 삶의 절벽에서 무슨 소리를 내야 할까. 울음소리? 노랫소리? 울음소리는 아무나 내는 소리다. 삶의 절벽에서도 오히려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믿음의
큰아들의 배려로 얼떨결에 영화관을 찾았다. 노인네는 우리 둘 뿐이라 조금은 멋쩍은 기분이었다.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는 어린 아들을 찾아 나선 아빠의 진한 부성애, 모험과 도전의 환상적인 바다 세계, 따뜻한 이웃사랑, 장중한 사운드, 박진감 넘치는 전개 등등 관객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한 감동적인 영화였다. 아빠는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아들을 찾는다. 아빠는 마냥 철부지인줄 알았던 아들이 어느새 훌쩍 자란 것을
봄이 왔다. 진달래는 만개, 철쭉 꽃망울은 금세 터질 듯하다. 철쭉꽃은 결코 진달래꽃을 앞지르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순리다. 사업차 카타르 행을 준비하던 동생이 이라크 전쟁을 전후하여 몇 달째 발이 묶여 있다. 종전(終戰)의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훌쩍 집을 나선다. 아들들이 어릴 적 살던 산동네를 찾는다. 집들은 거의 2층집으로 탈바꿈. ‘올챙이 계곡’은 물이 마르고
문조를 이웃집에 보냈다. 그런데 며칠을 못살고 죽었다는 기별을 받았다. 왜 죽었을까. 일 년 전, 얼떨결에 문조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처음엔 나름대로 온갖 정성을 쏟았다. 차츰 호기심이 떨어지면서 정이 식어갔다. 새장은 저만치 바깥 구석진 곳으로 옮겨졌다. 반가운 대면이 줄어들었다. 모이를 주고 청소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애완(愛玩)이 아니라 마지못한 사육(飼育)이었다. 또 겨울이 왔다. 문조를 집안으로 들일 생각은
영화 ‘아이 엠 샘.’ 7세 지능의 지체장애 아빠 샘과 7세 된 딸 루시가 등장한다. 루시는 결손가정의 아이로 비록 장애 아빠와 살고 있지만,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있어 항상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함께 함은 사랑의 원리다.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랑은 성숙되지 않는다. 또한 함께 함은 교육의 원리다. 사제동행(師弟同行) 없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예수
추석이 막 지나갔다. 우리 모과나무에 달랑 모과 한 개가 달려 있다. 낙과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해마다 가지가 휘도록 모과가 열렸다. 모과를 관상하는 재미며, 수확의 기쁨이며, 이웃에 나누는 즐거움이 꾀나 컸다. 도심에서는 흔치 않은 여유요 멋이었다. 올해는 모과 한 개. 그마저도 병들어 있다. 거둘 게 없다. 상실이다. 상실은 아픔이다. 작건 크건 분명히 아픔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우리 집 문조가 털갈이한다. 거실의 새장 주위가 온통 털이다. 바람결에 거실 여기저기 털이 날린다. 새장을 거실 밖으로 옮겼다. 햇볕을 가리려고 새장 지붕에 합판을 얹었다가 비를 견딜 수 있는 장판 지붕으로 바꾸어 고정시켰다. 태풍이 불던 어느 날 아내는 새장을 욕실로 옮겼다. 문조에게는 털갈이가 금욕 기간이다. 목욕물과 영양식의 공급이 중단된다. 문조는 식수와 모이만으로 견디며 털갈이해야 한다. 문조는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새로운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학교생활규정안을 초중고교에 배포하였다. 그 규정 중에 체벌(體罰)의 도구, 부위, 횟수, 장소를 담은 체벌 규정이 있어 눈길을 끈다. 교육당국은 그 동안 일관되게 견지해온 체벌 금지 방침을 접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체벌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그 체벌 규정은 비록 강제성이 없는 시안이라 할지라도 교육계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음이 있다.